부산 송정에 머무르는 동안 요새 핫한 툼 브로이펍에서 맥덕계의 유명인 '살찐돼지' 닉을 보유하신 김만제 원장님이 진행하는 독일 맥주 시음회를 다녀왔어요. 언젠가 독일 맥주는 너무 '정통'을 강조하다보니, 저 역시 수제맥주는 트렌디한 맥주 스타일을 좇아 다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요새 크래프트 맥주 신에서도 너무 많은 독특함,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보니 오히려 이것에 물려 "다시 정통으로 회귀하자"라는 느낌으로 독일 정통 맥주가 다시 뜨고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르네상스와 비슷하네요. 맥주계의 르네상스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해야하나요? 한국에서 독일 클래식 맥주를 양조하는 툼 브로이펍이 요새 맥덕들 사이에서 핫한 이유도 이 현상과 관련이 있겠죠.
이날 독일 맥주는 총 8종 시음했는데요. 독일 맥주 종류 및 새로 나온 툼 브로이펍 신상 맥주 시음 후기를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
1.쾰쉬 Kölsch - 쾰른 가면 꼭 마셔야 할 맥주
- ABV 4.4~5.2% / IBU 18-30
- 라이트 골드~골드
- 저먼 에일 이스트
전 독일 쾰른역에 도착했을 때 그 밤을 여전히 잊지 못합니다. 기차역 밖에 나오마자 저녁 조명을 받고 하얗게 빛나던 쾰른 대성당. 그 근처에서 저를 픽업나온 독일 친구에게 "야 맥주 마시러 가자"외치자 친구가 황당해하며 "아니 너 그 배낭을 메고 바로 맥주 마시러 갈거야?"라고 되물었습니다. 그 정도로 전 맥주가 고팠거든요. 그리고 그 때 그 친구가 데려간 쾰쉬 펍은 다른 맥주집과 달랐어요.
가늘고 긴 잔에 맥주를 따라주는데 따라주자마자 마치 샷처럼 빠르게 원샷하라고 친구가 알려주더라구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맥주를 원샷을! 했는데, 양이 적고 워낙 라이트한 맥주여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당시, 인상적인 것은 서버들이 '크란츠'라는 기구에 이 작은 잔들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빈 잔에 맥주를 막 채워줘요. 요청도 안했는데 채워주길래 서비스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다 돈을 내야한다는 점. 하지만 맥주의 고장은 한 잔당 2~3유로 선이었기 때문에 당시 부담 없이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기억을 툼 브로이펍 시음회에서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쾰쉬는 독일 쾰른이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필스너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맥주입니다. 쾰쉬는 에일 이스트를 사용했지만 에일보단 라이트 라거 느낌이 강합니다. 그 이유는 발효는 일반 에일맥주처럼 상면 발효 (18~20도)에서 진행되지만 저온 장기 숙성을 하면서 라거 풍미가 나는 깔끔함이 만들어진다고 해요. 참고로 쾰쉬란 이름은 쾰른지역에서 생산된 맥주에만 붙일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쾰쉬 맥주를 먹는 방법은 수입 병맥주 쾰쉬를 마시거나 현지에서 맛보는 수 밖에 없다는 점.
2.알트비어(Altbier) - 독일 뒤셀도르프 맥주
- ABV 4.3~5.5%
- IBU 25-50
- 라이트 앰버~ 브라운 컬러
- 저먼 에일 이스트
제가 네덜란드 살 때 뒤셀도르프에 진짜 많이 갔어요. 이유는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출발하는 저가항공이 정말 많았거든요. 당시 전날 일찍 도착해 뒤셀도르프를 돌아다니면서 알트비어를 맛본 적이 있어요. 쾰쉬 맥주처럼 가늘고 긴 잔에 서빙되는데 뒤셀도르프 대관람차 전경을 보면서 야외에서 혼자 감상에 빠져 마셨던 기억이 나네요. 알트비어를 맛있게 마셔서 당시 잔을 사서 한국에 들고왔는데 이사하면서 깨져서 맴찢.
알트는 영어로 old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말그대로 오래된 방식의 맥주입니다. 에일처럼 상면발효로 만들구요. 쾰른의 쾰쉬와 경쟁구도에 있는 맥주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알트비어를 생으로 취급하는 곳이 없는데 툼 브로이 펍에선 알트비어를 만듭니다. 이 날 시음한 맥주도 툼 브로이펍에서 만든 알트비어(anfang)입니다. 고소한 맛이 지배적이고 과하지 않은 홉의 쓸쓸함의 뒷맛으로 남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에요. 탄산이 많이 없으며 부드럽게 마실 수 있습니다.
3.헬레스 라거 (helles lager) - 뮌헨에서 체코 필스너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금색 라거 맥주
- ABV 4.7~5.4% , IBU 16~22
- 라이트 골드 - 골드
- 저먼 라거 이스트
체코 필스너가 유럽 전체를 거의 장악(?)하던 시기, 맥주의 본고장 무엇보다 뮌헨에서 이 현상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라거에요. 뮌헨에서 나오는 대부분 라거는 이 헬레스 라거 스타일인데요. 대표적으로 파울라너(Paulaner), 뢰벤브로이(Löwenbräu), 바이엔슈테판, 슈파텐(SPATEN)이 있습니다. 뮌헨과 뮌헨 주변에서 오리지널 라거라고 하면 바로 이 헬레스 라거를 가리킵니다.
최근 미국 크래프트 신에서 라거가 다시 유행하면서 이 독일 정통 헬레스 라거를 만드는 양조장이 많아졌고 이게 힙한 스타일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해요. 참고로 헬레스의 hell은 밝다는 뜻이에요. 밝은 라거란 뜻이죠.
4.둔켈 라거 (Dunkel Lager) - 어두운 색의 라거
둔켈은 독일어로 Dark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어두운 색의 라거를 가리켜요. 진한 갈색이 매력적인데요. 종종 어두운 색상으로 흑맥주와 많이 혼돈하지만 흑맥아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또한 흑맥주 (스타우트,포터) 특유의 탄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물론 약간 토스트함이 느껴지지만 쓰지 않고 상쾌하게 즐길 수 있어요.
5.헤페 바이젠 ( Hefe-weizen) - 밀맥주
이미 우리나라에선 파울라너 밀맥주로 너무나 유명하죠? 호가든처럼 프루티함이 느껴지면서 묵직함이 매력적이라 다른 일반 라거와도 차별성이 느껴져서 은근 대중적인 맥주입니다. 사실 이러한 밀맥주는 독일 맥주 순수령으로 인해 역사 명맥이 거의 끊길 뻔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맥주 생산의 3%정도에 미치는 비주류였다고 해요. 그런데 현재 독일 전체 맥주 시장을 필스너 라거와 양분하고 있습니다.
바이젠 특유의 맛은 사실 '밀'의 맛이 아닌 발효 이스트 맛입니다. 효모 발효시 에스테르와 페놀향이 나오는데요. 여기에서 과일 프루티함과 소독약? 혹은 향신료 맛에 가까운 향이 만들어지며 독특한 밀맥주만의 풍미를 형성해요.
6.로겐 비어
https://www.youtube.com/watch?v=61nQsK6lxNY
- ABV : 4.5%~6.0%
- IBU : 10-20
로겐은 호밀(rye)에 해당하는 독일어인데요. 독일 바이에른 레겐스부르크 일대에서 만들어지는 매우 희귀하고 독특한 타입의 밀맥주입니다. 독일에서도 구하기 힘든 로겐 비어인데 툼 브로이 펍에서 이걸 무려 생산해내는데요. 그 이유는 툼 브로이 펍 오너 브루어의 고향이 이 레겐스부르크 근처이기 때문입니다. 이 로겐 비어가 얼마나 희귀하냐면 독일 사람들도 잘 찾아 마시기 힘든 맥주인데 한 독일 사람이 인터넷 구글링하다가 한국에서 로겐 비어를 구할 수 있다라고 해서 어리둥절해하며 인터넷으로 연락해 택배로 부쳐줬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툼 브로이 펍의 로겐 비어는 매번 효모를 바이젠 혹은 에일 계통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맛과 풍미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호밀 맥주가 다소 낯설 수도 있는데, 전 호밀 특유의 시큼함이 표현되지 않을까 했는데 은근 스파이시함과 고소함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맥주에요. 툼브로이 펍에 가면 꼭 마셔봐야 하는 맥주!
7. 라우흐 비어 rauchbier
- ABV 5.4%~8%
- IBU 24
- 브라운-다크브라운, 저먼 라거 이스트
저 사실 라우흐 비어가 시음회에 나올 줄 몰랐어요. 제가 독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맥주를 꼽는게 바로 라우흐 비어였거든요. 밤베르그에서 2박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만난 독일 여자아이가 자기 친구들 소개시켜주면서 한 펍에서 라우흐 비어를 건넸어요. 처음 만나 보는 훈제 맥주에 충격, 맛있어서 2차 충격. 그 땐 맥주에 대해 그리 잘 모르던 때라 (맥덕 여행이 아닌, 순수 독일 여행이었음) 이 라우흐 비어가 다른 독일 지역에서도 맛볼 수 있는 건 줄 알고 밤베르그에서 그날 딱 하루 마셨는데 이후 폭풍 후회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라우흐 비어를 좀처럼 만나기 힘들더라구요. 그리고 병째로 수입이 잘 안되는 맥주로 알고 있는데 이날 시음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8. 고제 비어 (GOSE)
- ABV 4.2~7%
- IBU 5-12
고제 맥주는 매니아틱 맥주로, 사워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사랑할 맥주입니다. 제가 일전 포스팅에도 툼 브로이 펍에서 마신 고제 비어에 대해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고제는 독일 Goslar가 원산인데요. 이 지역에 염분기 있는 물로 인해 탄생한 맥주래요. 독일 정통 맥주와는 너무나 다른 스타일입니다. 완전 비주류 오브 비주류였는데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성장하며 사워 맥주처럼 개성있는 애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고제 역시 재조명되었죠. 한마디로 말하면 '소금과 레몬 같은 맥주'입니다. 호불호가 강하지만 대체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맥주에요.
9. 툼브로이 신상 - 프랑켄 둔켈 (Franken Dunkel)
- ABV 4.8% / IBU 22
독일 내에서도 맥주의 성지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어요. 바로 프랑켄(Franken)인데요. 인구는 약 1500명으로 매우 작은 곳인데 무려 4개의 브루어리가 있을 정도로 면적 및 인구대비 브루어리가 가장 많은 곳이죠.
이 지방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다름아닌 둔켈 라거입니다. 그래서 툼브로이 오너 브루어는 이 지방에서 받은 영감으로 프랑켄 둔켈을 이번에 런칭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제가 받은 인상은 '액체 빵'이란 느낌입니다. 그만큼 잘 구운 빵의 풍미가 잘 느껴졌거든요. 적당한 바디감과 살짝 밀려오는 단 맛 등 밸런스가 전반적으로 훌륭했습니다.
이날 부산 송정의 툼브로이 펍에서 다양한 독일 맥주를 시음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매년 1회씩 이맘때쯤 진행한다니 내년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놓치지 마시고 참가해보시길.
참고하면 좋을 글
https://lingual-hitchhiker.tistory.com/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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